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해전 (문단 편집) ==== 해전 이전 ==== 11월 13일 새벽 첫번째 야간 해전이 일어났다. 일본의 11전대가 전함 키리시마와 히에이를 보유했던 반면, 인근에 배치된 미 해군 호위함대는 순양함 위주로 비교적 약체였기 때문에, 아베 제독은 미군이 정면으로 덤빌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. 한편, 이 일본전함부대를 막아야 하는 미군 순양함 부대의 경우, 원래 2개 부대였던 것을 일본 해군에 대항하기 위해 급히 하나의 부대로 묶어서 편성한 것이었다.[* TARE 기동부대의 제1 에스피리투 산토 그룹과 제2 에스피리투 산토 그룹을 합쳤다. 다니엘 캘러헌 제독은 전자, 노먼 스코트 제독은 후자의 지휘관이었다.] 이 통합부대의 지휘를 맡게 된 캘러헌 제독은 함대지휘 경험이 없었고 참모 경험만 있었다. 실전 경험이 있는 스코트 제독보다 2주 먼저 진급된 짬밥과 캘러헌 제독이 스코트 제독보다 해군사관학교 3년 선배라는 이유로 지휘권을 부여받은 상황이었다. 이 때문에 캘러헌 제독이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을때 장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.[* 짬밥도 있었지만 캘러헌 제독의 경우 불과 얼마 전만해도 곰리 제독의 참모장이었던 터라 스코트 제독으로선 함부로 지휘권을 내놓으라는 소리를 하기가 힘들었을 거란 추측도 있다.][* 비록 실수는 있었지만 스코트 제독은 레이더를 이용해 미 해군이 야간 해전에서 최초로 승리를 한 에스페란스곶 해전의 지휘자였고 '리틀 홀시'라 불릴만큼 전투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. 해전 초기 레이더로 일본측 함을 먼저 발견했음에도 캘러헌 제독의 미숙한 대응으로 제대로 된 선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당했음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부분이다.] 적과의 충돌을 고려하지 않은 공격부대와 경험이 부족한 지휘관이 이끄는 수비부대가 맞붙게 된 1차 과달카날 해전은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시작되었다. 이후의 경과는 문자 그대로 ''''불 나간 술집의 난투극''''으로 진행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